효종 서거 후 조대비의 상복 착용 기간을 두고 서인(1년설)과 남인(3년설)이 치열한 성리학적 예론 논쟁을 벌여, 단순 의례를 넘어 정권 쟁탈의 도구로 비화되었습니다. (현종실록 기록 연계) ← 이전 사건다음 사건 →